안티오쿠스 4세 (175-164 BCE)
- 로마에 볼모로 잡혀 있다가 돌아와 왕위를 잇게 됨. 선왕들이 해 왔던 피지매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을 고수. 유대인들에게 있어 최악의 폭군으로 기억되는 인물.
-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본래 그의 칭호인 ‘에피파네스’(현명한 신) 대신에 ‘에피마네스’ (미친 사람)라고 불렀음.
- 안티오쿠스 4세는 통일된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획일적인 헬라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음. 그러나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에게 가장 큰 눈의 가싯거리와 같은 존재였을 것. 안티오쿠스 4세는 후에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고 그리스의 신들을 섬길 것을 강요. 이것에 마카베오 혁명의 단초가 됨.
또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것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으며, 그리짐에 있는 성전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하는 대로 나그네의 수호신 제우스의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마카베오2서 6:2)
안티오쿠스 왕은 하나님의 단 위에 이방의 단을 세우고 그 위에서 돼지를 잡았으며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요세푸스, 고대사, 5,4)
- 당시 유대인들은 보수파와 헬라파로 나뉘어져 있었음. 헬라 문화를 옹호했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그리스의 복장을 하고 그리스의 관습과 말을 습득함.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고유 신앙과 문화를 고수하였음. 안테오쿠스 4세는 유대지역의 도시들에 체육관과 신전, 경기장, 그리고 대중 목욕탕 들을 세웠음.
- 안티오쿠스 4세의 폭정의 이면에는 유대 사회의 분란이 있었음.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가 죽자 안티오쿠스 4세는 오니아스의 어린 아들 대신에 그의 형제 야손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함. (*마카베오서는 야손이 뇌물을 약속하고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서술 - 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안티오코스가 왕좌를 이어받았을 때,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하였다. 야손은 임금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은 삼백육십 탈렌트와 또 다른 수입에서 팔십 탈렌트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마카베오2서 4:7-8).)
- 이후 야손은 적극적으로 헬라화 정책을 추진. 그리스식 체육관을 예루살렘에 건축하고 운동경기를 개최
- 그러나 앞서 예루살렘의 금고를 왕에게 바치려고 했던 시몬의 동생인 메넬라오스가 더 많은 뇌물을 왕에게 바치고 기원전 172년 대제사장에 임명됨. (*여기서 마카베오서와 요세푸스의 기록이 엇갈림. 마카베오서는 메넬라오스를 성전 관리자 시몬의 동생이라 적고 있고, 요세푸스는 대제사장 시몬 2세의 아들이라 보고 있다. 두 기록의 견해에 따라 마지막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이 야손일 수도, 메넬라오스가 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에서 메넬라오스가 뇌물을 충당하기 위해 성전 금고에 손을 댔다는 혐의가 제기되어 소요가 일어나기도 함.
- 안티오쿠스 4세는 네 차례에 걸쳐 애굽에 선전포고를 함. 이 전쟁은 기원전 173년부터 시작됨. 그리고 169년에 일시적으로 이집트의 왕위에 오르기도 하나 다시 그 자리를 내어 주게 됨.
- 안티오쿠스 4세가 이집트에 대항한 두 번째 원정에서는 로마의 견제로 인해 퇴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죽었다는 거짓 소식이 전해졌음. 그래서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났던 야손이 무력으로 대제사장 직을 차지하려고 시도하였고 메넬라오스를 쫓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암몬 땅으로 달아났다가 이집트로 다시 쫓겨나 죽게 됨.
- 그러나 야손의 대제사장직 탈환 시도를 자신을 향한 유대의 반란이라 생각하여 잔인하게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고 제사를 중지시키고 종교 박해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됨.
- 포악한 필립이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고 성전 기물을 약탈함. 그리고 왕실 재정을 확충하고 전쟁 준비를 하기 위해 인두세, 제왕세, 성전세 등과 같은 세금을 부과.
- 안티오쿠스 4세는 169년에 이집트에 대한 마지막 원정을 나서게 되는데 이 때에도 로마의 견제로 실패로 돌아가게 됨. 그는 이에 대한 보복을 유대인들에게 하기로 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학살하고 헬라 왕조의 법과 종교에 순응하도록 강요 (마카베오1서 1:41 이하)
- 마카베오서는 이에 대항했던 유대인들의 순교에 대해 적고 있음.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마카베오1서 1:62-63)
마카베오 2서 7장 또한 참고.
- 이러한 박해에 저항한 반대 세력은 점차 커져갔고 이들은 나중에 하시딤(경건한 자) 혹은 바리새인(구별된 자)으로 불리게 됨. 이들은 율법주의를 고수함으로 헬라화에 맞서 종교 전통을 고수하는데 집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