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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쿰란 공동체의 정체성을 뚜렷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성전과의 “물리적인 거리”이다. 쿰란 공동체는 당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잘못된 제사장에 의해 주관되고 있었던 예루살렘 제의를 철저히 부정하였고, 어떠한 형태의 제사도 드리지 않았다. 이들의 신앙의 중심에는 성전 제사가 아닌, 이를 대체한 말씀 순종이 자리잡고 있었다. 즉, 이들은 토라를 읽고 쓰고, 해석하여 그들의 삶을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제사보다 더 중요한 신앙적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의 잘못된 성전 제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성전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새로운 성전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꿈꾸었던 성전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시간에는 쿰란 공동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지향했던 성전이 어떠했는지, “성전 문서”(11QT)와 “청동 문서”(3Q15)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구약성서에 나타난 성전


쿰란 문서에 나타난 성전 이해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구약 성서 가운데 성전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 성서에서 성전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했다. 그러나 또한 시대를 초월하여 성전이 주는 메시지가 있는데, 구약성서에 나타난 성전의 모습과 그 역사를 바라보면서 성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전과 관계된 간접적인 언급은 창세기 14장과 22장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왕들과의 전쟁을 치룬 후, 그는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살렘”은 예루살렘을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세기 14:18)

여기서 언급되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유일신 하나님과 관련된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하나님이 이미 이방인 멜기세덱에 의해 섬겨졌다는 것은 성전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멜기세덱은 쿰란 문헌과 신약성서(히브리서)에서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메시아를 나타내는 유비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성전과 예루살렘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창세기의 이야기는 22장, “이삭 제물”(혹은 “이삭의 결박”)이야가에서 나타난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으로 가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하시고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아브라함에게 이삭 대신, 나무에 걸려 있던 양을 바치게 하신다. 즉, 대속으로서의 제사 개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모리아산”(מוֺרִיָּה)이라는 명칭과 아브라함이 이 곳을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라고 부르는 부분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יֵרָאֶה) 하더라 (창세기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