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쿰란 문서가 발견된 경위와 이 쿰란 문서들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 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쿰란 지역의 지리적인 모습과 당시의 시대 배경, 그리고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을 통해 쿰란 공동체의 신앙적인 정체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누었던대로 쿰란 공동체는 유대 광야 사해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먼저 쿰란 공동체가 위치해 있는 그 광야라는 공간의 자리 그 자체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전과의 철저한 괴리성이다. 쿰란 공동체는 신앙적인 공동체임에 분명하지만, 그들이 거하는 자리는 분명 예루살렘 성전 밖이었다.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것처럼 유대교의 시작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기반한다. 이 때부터 물리적인 성전은 영원한 것이 아닐수도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그보다 영원한 토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적인 방향성(즉, 유대교의 시작)이 도래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전히 앞을 알 수 없는 혼돈 가운데 계속되게 된다. 바벨론 포로기에서 해방을 맞은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그 다음으로는 헬라 제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는데, 이후 이스라엘과 그 주변 중동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문화는 바로 헬레니즘 문화였다.
알렉산더 대왕